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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홉 가까이 들어가는 커다란 백자 술병이 바닥났기에, 나는 목례를 하고 술을 더 가지러 주방에 갔다. 뜨겁게 데워진 술병을 받쳐들고 돌아오면서, 나에게서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솟았다. 한 번도 남의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이제 와서, 젠카이 스님만큼은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다시 돌아와서 술을 권하는 내 눈이 아까와는 달리 매우 진지하고 솔직하게 빛나는 것을 스님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나는 여쭈었다.

"음, 착실하고 좋은 학생으로 보이는데. 뒷전에서 무슨 짓을 하며 노는지, 내가 알 바는 아니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옛날과는 달라서 놀러 다닐 돈도 없겠군.

아버님과 나와 이곳의 주지는, 젊었을 때 제법 나쁜 짓을 많이 했지."

"저는 평범한 학생으로 보입니까?"

"평범하게 보이는 게 제일이지. 평범하면 되잖아. 그편이 남들에게 의심받지 않으니까 좋아."

젠카이 스님은 허영심이 없었다. 지위가 높은 중들이 빠지기 쉬운 폐단이지만, 인물로부터 시작해서 서화나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감식을 의뢰받기 때문에, 나중에 감식이 틀린 것을 비난당하지 않도록, 단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물론 선승답게 그 자리에서 독단을 내리는 수도 있으나,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게 마련이다. 젠카이 스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단순하고 강한 눈에 비치는 사물에, 굳이 의미를 구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의미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았다. 또한 스님이 무엇보다도 나에게 위대하게 느껴진 것은, 사물을 보고, 가령 나를 보는 데에도, 스님의 눈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점에만 의지해서 이의를 내세우려 들지 않고. 타인이 보리라고 생각되는 그대로 본다는 점이었다. 스님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주관적인 세계는 의미가 없었다.

나는 스님이 말씀하려는 뜻을 알고, 서서히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타인에게 평범하게 보이는 이상, 나는 평범한 것이고, 어떤 이상한 행위를 굳이 한다고 하더라도, 내 평범함은, 키로 까부른 쌀처럼 남을 것이다.

나는 어느 틈엔가 자신의 몸이, 스님 앞에 서 있는 조용한 숲 속의 자그마한 나무처럼 여겨졌다.

"남들에게 보이는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걸까요?"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아. 하지만 유별난 짓을 저지르면, 또 남들은 그렇게 봐 주지. 세상은 건망증이 심하니까."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와, 어느 쪽이 오래 지속될까요?"

"어느 쪽이건 곧 멈추지. 무리하게 결심하고 지속시켜도, 언젠가는 멈추게 되지.

기차가 달리는 동안, 승객은 멈추고 있지. 기차가 멈추면, 승객들은 거기서부터 걸어야만 돼. 달리는 것도 멈추고, 숨도 멈추지. 죽음은 최후의 휴식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거든."

"저를 꿰뚫어봐 주십시오." 라고 결국 나는 말했다. "저는, 생각하시는 것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제 본심을 꿰뚫어봐 주십시오."

스님은 술을 입에 부어 넣고는, 나를 잠자코 보았다. 비에 젖은 녹원사의 크고 검은 기와지붕처럼 침묵의 무게가 내 위에 있었다. 나는 전율하였다. 갑자기 스님이, 더없이 맑고 쾌활한 웃음소리를 발하였다.

"꿰뚫어볼 필요는 없어. 전부 네 얼굴에 나타나 있거든."

스님은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완전히, 남김없이 이해되었다고 느꼈다. 나는 처음으로 공백 상태가 되었다. 그 공백을 틈타고 스며드는 물처럼, 행위에 대한 용기가 신선하게 솟구쳤다.

노사가 들어왔다. 오후 9시였다. 평소처럼 4명의 경비원이 순찰을 나갔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돌아온 노사는 스님과 술잔을 주고받았고, 심야 0시 반경, 동료 도제가 스님을 침소로 안내하였다. 스님은 목욕을 하였고, 2일 오전 1시에 야경꾼소리도 끊기자, 절간은 조용해졌다. 비는 아직도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홀로, 깔아 놓은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녹원사의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밤은 점차로 밀도와 중량을 더하여, 내가 있는 비좁은 헛간의 굵은기둥과 판자 문은, 이 낡은 밤을 지탱하며 엄숙하게 보였다.

나는 입 속으로 더듬거려 보았다. 한마디의 말이 평소나 다름없이, 마치 자루 속에 손을 넣고 무엇인가를 뒤질 때, 다른 것들에 걸려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물건처럼, 잔뜩 나를 안달시키며 입술 위에 모습을 보였다. 내 내계의 중량과 농밀성은, 마치 지금 이 순간의 밤처럼, 말은 그 깊은 밤의 우물 바닥으로부터 무거운 두레박처럼 삐걱거리며 올라왔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내계와 외계 사이에 있는 녹슨 자물쇠가 보아란듯이 열릴 것이다. 내계와 외계는 곧장 통하게 되어, 바람이 그곳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된다. 두레박은 가볍게 날 듯이 올라오고, 모든 것이 광대한 들판처럼 내 앞에 전개되어, 밀실을 무너지게 된다...그것은 이미 목전에 있다. 조금만 더 뻗으면, 내 손이 닿으리라...'

나는 행복으로 가득하여, 1시간이나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생전에 이때처럼 행복했던 시간은 없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돌연히 나는 어둠 속에서 일어섰다.

대서원의 뒤쪽으로 살그머니 걸어나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짚신을 신고, 가랑비 속을 녹원사 뒤쪽의 고랑을 따라 걸어서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작업장에 재목은 없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톱밥이 빗속에서 습기 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에 사다 놓은 짚단이 쌓여 있었다. 한 번에 40단씩이나 사다 놓는다.

그러나 오늘밤은 이미 거의 다 쓰고 석 단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석 단을 안고서, 밭 옆으로 되돌아왔다. 숙소 쪽은 잠잠하였다. 부엌 모퉁이를 돌아 집사실 뒤까지 왔을 때, 그곳 변소의 창문에 갑자기 불이 켜졌다.

나는 그 자리에 웅크렸다.

변소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부사인 모양이다. 이윽고 오줌 누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끝도 없이 길었다.

짚단이 비에 젖을 것을 염려하여, 나는 웅크린 자세에서 가슴으로 집단을 가렸다.

미풍에 흔들리는 이끼 낀 숲에, 비로 인하여 변소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오줌소리가 그쳤다. 몸이 판자 벽에, 비틀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부사는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창문의 불이 꺼졌다. 다시 나는 석 단의 짚은 안고서, 대서원 뒤쪽으로 걷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