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나무 밑동에 몸을 기대었다. 그 축축하고 차가운 나무껍질은 나를 매료시켰다. 이 감각, 이 차가움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는 그대로의 형태로 정지되었고, 욕망도 없는 채, 나는 만족하고 있었다.
'이 격심한 피로는 어찌 된 일일까?'하고 생각했다. '어쩐지 열이 나고 나른하며 손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아마도 나는 병에 걸렸나 보다.'
금각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약법사'의 순토쿠마루가 본 일상관의 경치처럼.
순토쿠마루는 석양의 그림자가 춤추는 나니와의 바다를, 맹목의 어둠 속에서 보았다. 구름도 없이, 아와지에 섬, 스마이카시, 기노우미조차도 석양에 비치는 것을 보았다...
내 몸은 마비된 듯하였고,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아침까지 이대로 있다가, 남들에게 발견된다 해도 좋았다. 나는 한마디도 변명의 말을 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장황하게,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의 무력함에 대하여 설명해 온 것이나 다름없으나, 돌연히 되살아난 기억이 기사회생의 힘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여야만 하리라. 과거는 우리들을 과거 쪽으로만 잡아당기는 것은 아니다. 과거 기억의 여기저기에는,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강력한 강철로 된 용수철이 있어서, 그것에 현재의 우리들이 손을 대면, 용수철은 곧바로 늘어나 우리들을 미래 쪽으로 퉁겨 버리는 것이다.
몸이 마비된 듯하면서도, 마음은 어딘가에서 기억 속을 더듬고 있었다. 다시 살졌다... 그 말이 나를 부르고 있다. 아마도 나를 고무하기 위하여, 나에게 접근하려는 것이리라.
"안으로 향하여 밖으로 향하여 마주치면 즉각 죽여라."
...그 최초의 한마디는 그런 것이었다. "임제록" 시중의 유명한 구절이다. 말은 잇달아 거침없이 나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상을 만나면 조상을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서, 비로소 해탈을 얻노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투탈자재히지리라."
그 말은 내가 빠져 있던 무력감으로부터 나를 끌어 내었다. 갑자기 전신에 힘이 넘쳤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집요하게 알리고 있었으나, 내 힘은 헛수고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부질없는 짓이기에 오히려 나는 하여야만 했다.
곁에 있는 방석과 보자기를 뭉쳐서 옆구리에 끼고, 나는 일어섰다. 금각 쪽을 보았다. 찬란하던 환상의 금각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간은 서서히 어둠에 잠기고, 늘어선 기둥들은 모습이 분명하지 않았다. 수면에 반사되던 빛은 사라지고, 처마 밑의 반영도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세부는 남김없이 밤의 어둠에 숨어들어, 금각은 단지 검정 일색의 희미한 윤곽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달렸다. 금각 북쪽으로 돌았다. 발길은 익숙하여 있었기에,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어둠이 잇달아 펼쳐지며 나를 안내하였다.
나는 연못가에서, 금각 서쪽의 판자 문이 양쪽 모두 열려 있는 입구로 뛰어들었다. 껴안고 있던 방석과 보자기를 쌓여 있는 짐들 위에 던졌다.
가슴은 마구 고동치고, 젖은 손을 가볍게 떨렸다. 더구나 성냥은 젖어 있었다.
첫 번째는 불이 붙지 않았다. 두 번째는 붙으면서 부러졌다. 세 번째는 바람을 가린 내 손가락 사이를 밝히며 타올랐다.
짚이 있는 곳을 찾은 이유는, 아까 스스로 석 단의 짚을 이곳저곳에 끼워 놓았으면서도 이미 그 장소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찾아 내었을 때, 성냥불은 꺼졌다. 그곳에 웅크리고, 요번에는 두 개비를 한꺼번에 켰다.
불은 짚더미에 복잡한 그림자를 그리더니, 밝고 메마른 들판과도 같은 색깔을 띠며 점차로 사방에 퍼졌다. 이어서 치솟는 연기 속으로 불이 몸을 감추었다.
그러나 생각하지도 않은 먼 곳에서, 모기장의 푸른색을 부풀리면서 불길이 올랐다.
주위가 갑자기 들뜬 분위기가 된 느낌이었다.
내 머리가 이때에 한결 맑아졌다. 성냥은 몇 개비 안 되었다. 요번에는 다른 쪽 구석으로 달려가, 한 개비의 성냥을 소중히 하여, 다른 짚단에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불은 나를 안심시켰다. 예전에 동료들과 모닥불을 피울 때, 나는 불을 지피는 솜씨가 좋았었다.
법수원 내부에는, 커다랗게 흔들리는 그림자가 생겼다. 중앙의 미타, 관음, 세지의 삼존상이 환하게 모습을 보였다. 요시미쓰상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목상의 그림자도 등뒤에서 펄럭였다.
열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성금함에 착실히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보고,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칼모틴과 단도를 잊고 있었다. 이 불길에 싸여 구경정에서 죽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불길을 피하여 좁은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조음동으로 올라가는 문이 어째서 열려 있는가 하는 의문은 솟지 않았다. 늙은 안내인이 2층의 문단속을 잊은 것이다.
연기는 내 등에 다가와 있었다. 기침을 하며, 게이신의 작품이라는 관음상과, 천인주악의 천장화를 보았다. 조음동에 떠돌던 연기는 점차로 자욱하여졌다. 나는 계속하여 계단을 올라가, 구경정의 문을 열려고 하였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3층 자물쇠는 견고하게 잠겨 있었다.
나는 그 문을 두드렸다.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겠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그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가 구경정의 내부에서 열러 주리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구경정에 기대하였던 것은, 분명히 자신의 죽을 장소였지만, 연기가 이마 가까이 다가와 있었기에, 마치 구제를 바라듯이 성급히 그 문을 두드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 저쪽에는 사방이 불고 3칸 4척 7치밖에 안 되는 작은 방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이때에 절실히 꿈꾼 것은, 지금은 대부분 벗겨져 있기는 하지만, 그 작은 방이 온통 금박으로 발려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 문을 두드리면서, 내가 얼마나 그 눈부신 작은 방을 그리워하였는가는, 설명할 수가 없다. 하여튼 그곳에 도달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금빛의 작은 방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힘껏 두드렸다. 손만으로는 부족하여, 직접 몸을 부딪쳤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음동은 이미 연기로 가득하였다. 발 밑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연기에 숨이 막혀서 거의 실신할 정도였다. 심하게 기침하면서 계속 문을 두드렸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일순간, 거부당하고 있다는 확실한 의식이 나에게서 솟았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내렸다. 연기가 소용돌이치는 속을 법수원까지 내려와, 아마도 나는 불길 속을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간신히 서쪽 문에 도달하여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나는 자신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쏜살같이 달렸다.
...나는 달렸다. 얼마나 쉬지 않고 달렸는지 모른다. 어디를 어떻게 지나왔는지도 기억 나지 않는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는 공북루 옆으로부터, 북쪽 뒷문을 나와서는, 명왕전 곁을 지나 대나무와 철쭉의 산길을 달려올라서, 히다리오모지 산의 정상까지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