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나무 그늘의 조릿대 밭에 쓰러져서, 격렬히 고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헐떡이는 장소는, 분명히 히다리오모지 산의 정상이었다. 그것은 금각을 정북쪽에서 수호하는 산이다.
내가 명료한 의식을 되찾은 것은, 놀란 새들이 소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떤 새는 내 얼굴 바로 가까이에 커다란 날개를 스치며 날아갔다.
벌렁 드러누운 내 눈은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새들이 울어 대며 소나무 가지 사이를 지나갔고, 이미 불꽃이 머리 위의 하늘에 드문드문 떠돌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멀리 계곡 사이의 금각 쪽을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소리가 그곳에서 울려왔다. 푹죽 같은 소리이기도 하다. 무수한 인간의 관절이 일제히 울리는 듯한 소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금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소용돌이치는 연기와, 하늘로 치솟는 불길이 보일 뿐이다. 나무 사이로 수많은 불꽃이 날리어, 금각 위의 하늘은 금가루를 뿌린 듯하다.
나는 다리를 꼬고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니, 몸이 온통 물집과 찰과상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손가락에도, 아까 문을 두드릴 때의 상처인 듯 피가 배어 있었다. 나는 도망쳐 나온 짐승처럼 그 상처를 핥았다.
호주머니를 뒤지니, 단도와 수건에 싸인 칼모틴 병이 나왔다. 그것을 계곡 사이를 향하여 던져 버렸다.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작품 해설
소멸과 생성의 청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세계
1970년 11월 25일, 당시 만 45세의 미시마 유키오가, 자신을 지지하는 우익 단체인 '다테노카이' 대원들을 이끌고 이치가야 육상 자위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궐기를 외친 후, 할복자살한 지 4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에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들고,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던 그 사건도 이제는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불과 13세의 나이에 "수영"을 발표한 이후로, 유작 "풍요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180편의 소설과 60편의 희곡, 그리고 막대한 수의 수필 및 평론을 발표하여 '쇼와의 귀재'라고 불렀던 미시마의 작품 중에서, "금각사"는 그 정점이기도 하며, 동시에 전후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만년의 미시마가 내셔널리즘의 작가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가 정치 사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3년 "하야시 후사오론"을 발표한 이후이며, 그 이전은 오히려 '전후 세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정치에 무관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1956년에 발표된 "금각사"를 굳이 그의 정치적 성향과는 결부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코멘트를 하고자 한다.
미시마의 작가 편력은, 10대를 습작기, 20대를 초기, 30대를 중기, 40대를 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기, 즉 초기에서 중기로 전환하는 시기이다. 이 당시의 미시마의 문학 세계는 한마디로, 감수성에서 지성으로의 변천을 의미한다.
미시마는 미숙아로 태어나, 허약한 체질과 왜소한 체구,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일상 생활에 대한 불안'을 품은 채 성장하였다. 그 감수성과 불안은 "담배"(1946)나 "가면의 고백"(1949) 등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한 미시마가 30대를 맞이하여 육체미 운동을 시작함과 더불어, 급격히 육체와 지성을 중시하는 문학 세계로 돌입하게 된다.
미시마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적 원리'로부터 '남성적 원리'로의 이행이며, '자기 개조의 시도'이다.
미시마가 '남성적 원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작품으로는 30대에 들어서 최초로 발표한 "침몰되는 폭포"(1955)를 들 수 있다. 일찍이 부모의 사랑도 모르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기도코로 노보루는, 여자라곤 없는 집안에서 돌이나 철로 만든 장난감만 갖고 놀았기에 냉담한 성격의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는 불감증에 걸린 유부녀 기쿠치 아키코와 불륜의 관계를 맺지만, 아키코의 불감증이 치유되자 그녀를 버린다. 실연 당한 아키코는 폭포에서 투신자살을 하고, 그 폭포는 노보루가 참가한 댐 공사로 인하여 매몰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주인공 노보루의 성장 환경으로부터 철저히 여자의 손길을 배제시켰다는 점과, 노보루의 상징인 댐이 아키코의 상징인 폭포를 매몰시켰다는 점에서, '남성적 원리'에 의한 '여성적 원리'의 구축을 테마로 삼았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 "침몰되는 폭포"는 인물 묘사를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너무도 인공적인 냄새를 풍기는, 부자연스럽고 비현실적인 작품이라는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반하여, 이듬해에 발표된 "금각사"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취재한, 이른바 '시사 소설'이기에, 우선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또한, 작품을 수기 형식으로 만들어 고백적인 성격을 부여한 것도, 미시마 문학이 '여성적 원리'에서 '남성적 원리'로 이행하는 과정을 묘사하기에는 적절하였다.
사실상 "침몰되는 폭포"를 발판으로 하여 "금각사"의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었기에, 어떤 의미에서 "침몰되는 폭포"는 "금각사"의 시작품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침몰되는 폭포"에서 댐의 건설로 폭포가 침몰된다는 상징성은, "금각사"에서 주인공 미조구치의 방화로 바뀌어 나타난다. 또한 젊은 시절 특유의 감수성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작가로서의 충분한 경험, 그리고 새로운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육체적인 지성이 가미되어, 최고의 역작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칫하면 이러한 과도기에서 좌절하기 쉬우며, 미시마 역시 "침몰되는 폭포"에서 그러한 결함을 드러내었으나, 결국 "금각사"의 성공으로 인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겠다.
'금각사'는 1956년 1월부터 10월까지 잡지 "신조"에 연재되어, 그해 10월 말에 단행본으로 신조사에서 간행되었다.
시사 소설로서의 "금각사"가 얼마만큼 현실의 사건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가는, 이 사건의 범인인 하야시 쇼켄(본명은 요켄)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야시의 신상에 관하여는 미나카미 쓰토무가 20년의 세월에 걸쳐서 면밀히 조사하여 작성한 "금각염상"(1079)이 가장 세밀하지만, 방화범이라는 관점에서 범행에 관련된 부분만을 종합한 것으로는 고바야시 준쿄의 "금각 방화승의 병지"가 있다. 이 자료들의 내용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방화범 하야시 쇼켄은 1929년 3월 19일 교토 부 마이즈루시 근교의 나리우 곶에 위치한 서덕사라는 조그만 절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도겐은 31세, 어머니 시마코는 29세였다. 아버지는 부유한 지주의 차남으로, 어려서부터 온화하고 말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었으며, 원래가 허약 체질로 26세에 주지가 되어 결혼 후에서 건강이 좋지 않았고, 하야시가 태어난 후에 결핵에 걸렸다.